"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삶의 주연을 갈망한 여인의 외침

입력 2024-01-11 19:06   수정 2024-01-12 00:38


영화가 시작되면 오슬로의 도시 풍경을 배경으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관객은 앞으로 두 시간 동안 이 여성, 율리에의 삶을 따라갈 것이다.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인 것일까?” 하는 호기심을 품은 채로.(영화 원제는 ‘세상 최악의 인간’)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살의 율리에는 자신이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닫고 서점에서 일하며 사진 일을 시작한다. “내 인생은 언제 시작되는 것일까.” 마치 소설의 3인칭처럼 내레이터가 율리에의 속내를 기술하는 이 프롤로그를 보자마자 나는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율리에는 파티에서 만난 연상의 남자 악셀과 사랑에 빠진다. 45세인 악셀은 만화가로서 성공해 자리를 잡았고, 이제 자신의 또래 친구들처럼 인생에서 안정감과 아기를 갖길 원한다. 그러나 율리에는 아직 젊고, 사진작가로서 자아실현의 한 발도 제대로 내딛지 못한 상태다. 둘은 연인이 되고 동거를 시작하지만, 둘의 인생은 다른 타임라인에 놓여 있다. 아이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율리에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와 같은 것은 별세계 이야기다. 이제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열고 싶은 악셀과 아직 자신의 인생 챕터를 시작도 못한 기분인 율리에는 갈등을 겪는다.

“대체 뭘 원하느냐”는 악셀의 물음에 율리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율리에. 누구나 이런 기분을 느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탈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어떻게 하면 자기 삶의 주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율리에가 하는 것은 열심히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것이다. 새롭게 만난 남자 에이빈드에게 끌리고 악셀에게 이별을 고한다. 연애는 그만큼 자신의 다른 모습을 이끌어내고 변화시킨다. 연애 이야기를 경유한 한 여성의 인생 탐구 이야기를 보며 많은 독자에게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소설 양귀자의 <모순>이 떠오른다. <모순>의 프롤로그도 비슷하다. 미혼 여성 안진진은 어느 날 아침 문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고 부르짖는다. 그런 안진진이 맞이한 당면 과제는 다른 성향의 두 남자 사이에서 결혼할 짝을 결정하는 것이다.

율리에의 여정에 동참하며 관객들은 율리에가 사랑스럽기도, 최악의 인간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율리에가 여정의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했다는 것이다. 모든 성장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정대건 소설가·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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